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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글

국립공주박물관 특별전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

장례로 이은 두 왕의 길

2023년 특별전과 523년 무령왕의 장례식

2023년은 백제 무령왕이 돌아가신지 1500주기가 되는 해이다. 이 뜻깊은 해를 맞이하여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의 장례식을 복원하고, 백제 왕실의 장례문화를 조명하고자 특별전시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장례를 마련하였다. 523년 5월 7일 무령왕이 돌아가시고 525년 8월 12일 무덤에 안장되기까지 태자 성왕은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장례식을 치렀다. 전시에서는 무령왕의 장례를 치르며 성공적으로 왕위를 계승하고 더 강한 백제로 나아가고자 한 성왕을 기억하기 위해 무령왕성왕을 두 주인공으로 하였다. 전시품은 무령왕릉 출토품을 중심으로 126건 697점을 선별하고, 장례 단계별 5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전시하였다. 프롤로그는 무령왕의 죽음의 순간을, ~부는 성왕이 치른 3년 동안의 상장례와 그 후의 과정을, 에필로그는 성왕이 즉위한 뒤 찬란하게 펼쳐질 새로운 백제의 시간을 담았다.

프롤로그: 523년 5월, 무령왕이 돌아가시다

523년 5월 7일은 백제를 중흥한 무령왕이 돌아가신 날이다. 당시 20대 초반이었을 태자 성왕은 갑작스레 닥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왕권을 계승해야 할 태자로서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성왕은 한때 기울어져 가던 백제를 일으켜 세우고, 나라 안팎으로 업적을 쌓아 갱위강국更位强國(다시 강한 나라가 되다)을 선언한 위대한 무령왕의 후계자였다. 523년 5월 7일은 무령왕의 사망일이자 성왕이 무령왕의 정치적 유산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이어야 할 책무를 짊어진 날이기도 하다. 무령왕의 묘지석墓誌石은 죽음을 뜻하는 글자 崩(붕)과 함께 왕의 사망일과 장례일이 기록되어 있다. 삼국시대 왕릉 출토품 중 무덤의 주인공과 장례 기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실물자료는 묘지석이 유일하다. 이 유일성의 의미를 담아 프롤로그에서는 묘지석 한 점만을 전시하여 왕의 죽음의 순간을 극적으로 소개하고, 영상은 추모의 불빛인터랙티브 요소를 도입하여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조문객이 되어 1500년 전 무령왕의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프롤로그를 지나면 좌우 벽면에 삼베 휘장이 늘어선 <성왕의 길>을 지나게 된다. 이 길을 지나는 관람객들의 발걸음마다 반응형 인터랙치브 조명이 비치면서 성왕이 주재한 3년 동안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기대감을 느끼도록 하였다.

부. 무령왕 시대의 마지막, 왕의 장례를 준비하다.

무령왕의 죽음을 맞이한 성왕은 태자 명농明穠이 아닌 새 왕의 지위에서 장례를 치러야 했다. 장례 준비의 주체가 누구였는지 명확하게 밝혀낼 수 없지만, 현재 남겨진 무령왕릉과 장례물품은 분명 성왕이 정하여 남긴 것이다. 성왕은 선대 왕들의 무덤이 자리한 공주 왕릉원의 토지신들에게 터를 사들여 매지권買地券란 문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무령왕이 사후에도 좋은 곳으로 가도록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연꽃무늬 벽돌무덤蓮花文塼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덤의 주인인 무령왕의 생전 이름 사마斯麻를 새긴 묘지석을 넣어 아버지 무령의 업적을 기렸다. 유학에 조예가 깊었던 성왕은 그 가르침대로 슬픔을 적절하고 조화롭게 표현하며 예와 정성을 다해 3년 상을 치러냈다. 전시에서는 성왕의 장례 준비의 대표 전시품인 매지권과 철오수전鐵製五銖錢, 연꽃무늬 벽돌을 전시하고, 묘지석과 매지권을 실물과 똑같은 석재와 모양으로 만든 복제품을 제작하여 촉각전시품 체험테이블을 마련하였다. 테이블에는 촉지문과 함께 키오스크형 영상과 음성을 제공하여 국보 문화재를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부. 사마왕은 무령왕으로, 태자 명농은 성왕으로

성왕은 무령왕의 시신을 살아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정성을 다해 꾸며드렸다. 화려하고 정교한 금은제 꾸미개들은 무령왕이 생전에 착용한 것을 장례 때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왕이 착용한 복장도 생전에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학에 정통했던 성왕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는 관복을 입혀 장사 지내는 제도(조복장朝服葬)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목관木棺은 왕의 시신을 넣고(대렴大殮), 빈소에 모셔둔 장례용품으로 대렴 과정에서 왕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목관에 안치된 왕은 더 이상 생전 이름 사마斯麻가 아닌 시호 무령武寧으로 불리며, 아들 명농은 태자가 아닌 성왕이 되어 조문객들을 맞이한다. 전시에서는 죽은 왕이 생전에 착용한 각종 금은제 꾸미개와 함께 장례용품으로 특별히 만든 베개頭枕발받침足座, 금동신발金銅製飾履을 소개하였다. 목관 주변으로 하얀 장막을 쳐서 빈소를 재현하고, 하늘 영상을 상영하였다. 영상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를 따라 왕의 죽음과 27개월 시간의 흐름이 표현되고, 무령왕의 혼이 하늘로 올라 백제를 보살펴 주는 별이 되는 과정을 연출하였다.

부. 장례를 마치고, 성왕의 시대가 열리다

빈례殯禮를 모두 마친 성왕은 다음으로 장례행렬을 꾸려 벽돌무덤까지 목관을 이동하여 무덤에 안장하였다. 장례행렬은 성대했을 것이며, 매장 의례는 매우 화려하고 격식 있게 치러졌을 것이다. 무덤 안의 그릇들은 값비싼 중국 도자기와 청동제 그릇들로 채우고, 무덤 안에서는 세 번에 걸쳐 제사를 지냈다. 마지막으로 널길에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鎭墓獸를 넣고 그 앞에 묘지석과 매지권을 놓았다. 장례를 마친 2년 뒤 성왕은 무령왕비의 상을 치르는데, 그 과정에 대통사大通寺란 큰 절을 짓게 된다. 이 절은 무령왕과 왕비의 명복을 빌면서, 불교로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은 절로 추정된다. 성공적인 장례식을 치르고, 왕실사찰까지 건립한 성왕은 새 왕으로서의 자격을 비로소 완전히 갖추게 된다. 전시에서는 방상씨의 창으로 추정되는 은으로 장식된 창銀裝鐵矛과 세 벌의 제사상 등을 복원하여, 백제 상장의례喪葬儀禮에 관한 최신 견해를 소개하였다.

에필로그: 더 강한 백제를 이어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성왕이 지혜와 식견이 빼어나고 일을 잘 결단하였으며, 무령왕이 돌아가시자 왕위를 이은 것으로 전한다. 성왕은 장례식 중에 즉위식을 치렀지만, 실질적인 왕권 계승은 525년 8월 12일 장례를 모두 마친 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성왕은 태자 시절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아 즉위 이듬해에 중국 양 나라와 외교관계를 돈독히 하였다. 그리고 백제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구려와 전쟁하였고, 훗날에는 유학자(모시박사毛詩博士)와 불교 경전(열반경涅槃經) 등을 들여와 백제의 정치와 사회, 문화를 한층 더 수준 높게 끌어올렸다. 무령왕이 이루어 놓은 기틀 위에 자신의 역량을 더한 성왕은 더 강한 백제를 만들어 갔다. 전시에서는 성왕이 펼쳐나가는 새 시대를 상징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삼국사기 성왕의 즉위 기사 부분을 소개하고, 다채롭고 화려한 색감의 꽃비 영상을 상영하였다. 흑경을 통해 사방으로 퍼지는 꽃비 영상은 성공적으로 장례식을 마치고 더 강한 백제로 나아가는 성왕의 시대를 밝게 비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