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웅진백제문화 아카이브 시스템

웅진백제,
그시절을 기록하다

Archive. Collection 02
02
무령왕릉
해방 이후 최대의 발견
백제사 연구의 대전환

무령왕릉 출토품은 크게 널길과 무덤방으로 구분할 수 있다. 널길에는 진묘수, 묘지석과 철오수전, 청자단지와 청동그릇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묘지석으로 무덤의 주인공을 밝히고, 철오수전으로 무덤 터를 사고, 진묘수로 무덤을 지켜내며, 각종 청자와 청동그릇으로 왕과 왕비를 위한 제사상이 차려진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무덤방에는 왕과 왕비의 나무널, 베개와 발받침 외에 각종의 화려한 꾸미개와 껴묻거리 등이 출토되었다.

01 왕의 껴묻거리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
01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

진묘수는 중국 후한대(後漢代)부터 나타나는 뿔과 날개가 달린 상상의 동물로, 무덤을 지키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신선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무령왕릉 진묘수는 머리에 뿔이 하나가 달리고, 몸에는 갈기 같은 날개가 있으며, 입은 살짝 벌리고, 네 다리는 걷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입과 몸통 일부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붉은 진사(辰砂)를 칠했다. 안료 분석 결과 다리에는 녹색, 갈기에는 분홍색도 확인되었다. 몸통은 각섬석암을 깎아 만들었고, 뿔은 철로 만들었다.

묘지석(왕)
02-1

묘지석(왕)

묘지석(왕)
간지도(왕)
02-2

간지도(왕)

왕 묘지석의 뒷면에 새겨진 간지도이며,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 글자가 새겨 넣은 것으로 방위를 적은 간지도 또는 능역도(陵域圖)로 볼 수 있다. ​

간지도(왕)
매지권(왕)
03

매지권(왕)

매지권(왕)
철오수전(왕)
04

철오수전(왕)

무령왕릉 매지권 뒷면(왕비 묘지석)에 꾸러미로 놓인 채 발견되었다. 이 오수전은 무령왕의 무덤 터를 토지신에게 사기 위해 실제 유통되는 돈을 무덤 안에 넣은 것이다. 매지권에 기록된 1만문(一万文)이란 단위는 돈 꾸러미란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오수전은 원래 동전으로 만들었으나, 철오수전은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 4년(523년)에 다시 주조(鑄造)되면서 한시적으로 유통되었다. 이로서 무령왕릉 철오수전 또한 무령왕이 사망한 해인 52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꾸미개는 동물 모양 흑옥꾸미개와 유리 동자상, 유리구슬을 제외하면 모두 금속품에 해당한다.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꾸미개들은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다. 출토 위치와 제작 양상으로 꾸미개의 용도를 살펴볼 수 있는데, 왕은 머리 부분부터 순서대로 금뒤꽂이, 관꾸미개, 금귀걸이(1쌍), 은허리띠와 금·은 허리띠드리개, 오각형 은꾸미개, 동물 모양 흑옥꾸미개, 흑옥 금테 목걸이, 금구슬(2종), 은구슬, 금·은 장식손칼, 용·봉황무늬 고리자루큰칼, 금동신발이 출토되었다. 이 중 금으로 만든 꾸미개들은 금의 순도가 매우 높게 나왔는데, 특히 관꾸미개와 귀걸이, 목걸이에서 98%가 넘는 금 함유량을 보여 제작에 더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제작기법 또한 현대의 기술로도 재현하기가 까다로운 누금기법(鏤金技法) 등 여러 제작 기법들이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꾸미개에서 보이는 세부 장식적 요소와 무늬의 특징은 백제만의 독창성이 지니고 있다.

금뒤꽂이(왕)
05

금뒤꽂이(왕)

금뒤꽂이는 무덤방 내 동쪽에 위치하는 왕의 머리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출토 당시 꽂이 윗부분이 밖으로 구부러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전체 모양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새를 위에 서 내려다본 모습을 연상케 한다. 금(Au) 함유량은 92.5~94.2%이다.

관꾸미개(왕)
06

관꾸미개(왕)

왕의 머리 부분에서 1쌍의 관꾸미개가 서로 겹쳐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금(Au)이 98.0~99.1%로 거의 순금(24K)에 가깝다. 금판을 두드려 얇게 편 다음 오려서 무늬를 만들고 달개(瓔珞)를 달았다. 전체 모습은 불꽃을 보는 듯 생동적이다.

톱니형 금꾸미개(왕)
07

톱니형 금꾸미개(왕)

금제 꾸미개로 왕의 관꾸미개 근처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왕의 관을 장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Au) 함유량은 관꾸미개와 비슷한 97.9~98.9%이다.

금귀걸이(왕)
08

금귀걸이(왕)

왕의 관꾸미개 아래에서 발견된 귀걸이이다. 원형의 중심고리에 두 줄의 드림 장식이 매달려 있다. 짧은 드림 장식에는 원통형의 중간 장식과 연결되고, 그 아래에 하트 모양 꾸미개 3개가 달려 있다. 긴 드림 장식에는 공 모양의 장식에 나뭇잎 모양 달개가 달려 있고, 그 끝에는 금모가 씌워진 곱은 옥이 연결되어 매우 화려하다. 금(Au) 성분은 97.8~99.8%가 함유되었다.

흑옥 금테 목걸이(왕)
09

흑옥 금테 목걸이(왕)

왕의 허리띠 부근에서 발견된 흑옥으로 만든 금테 목걸이다. 금테 가운데에 흑옥을 관통하는 구 멍이 뚫려 있어 이 사이로 줄을 끼워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 수량을 셀 수 없는 잔편을 제외하면 무령왕릉 출토 흑옥 금테 목걸이의 개체는 모두 113점이다. 이 흑옥은 기존에는 탄목(炭木), 탄정(炭精) 등으로 불렸으나 비파괴 성분 분석 결과 흑옥으로 확인되었다. 흑옥은 신라, 가야 지역에서도 확인되지만 출토량이 많지 않은 반면 백제 지역에서는 김포 운양동,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서산 부장리, 부여 능산리 절터와 왕흥사 터 등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금구슬(왕)
10

금구슬(왕)

왕의 허리 부분에서 흩어진 채로 출토되었다. 모두 73점으로 모양은 밀감 모양 또는 참외 모양이다. 금으로 만든 반구(半球)를 서로 맞붙여 둥근 모양의 금구슬로 만들었다. 금(Au) 함유량은 99.0~99.3%이다.

금구슬(왕)
11

금구슬(왕)

왕의 가슴과 허리 부근에서 흩어진 채 발견되었으며, 모두 272점이 확인된다. 금으로 만든 반원 모양의 장식을 서로 맞붙여 공 모양의 구슬로 금(Au) 함유량은 98.6~99.2%이다.

은구슬(왕)
12

은구슬(왕)

은구슬은 끈으로 연결할 수 없는 파편을 제외하고 모두 649점이 확인되었다. 은으로 만든 반원 모양의 장식을 서로 맞붙여 공 모양의 구슬로 만들었다. 각각 위아래로 구멍이 있어 끈으로 연결할 수 있다.​

은허리띠와 금·은허리띠드리개(왕)
13

은허리띠와 금·은허리띠드리개(왕)

왕의 은허리띠와 금·은허리띠드리개 세트이다. 왕의 허리 부분에서 출토되었으며, 은허리띠는 큰 타원형 은판과 작은 타원형 은판을 교대로 연결하고 한쪽 끝에는 띠고리를, 반대쪽 끝에는 꽃 모양 꾸미개를 달았다. 타원형 판은 오목한 부분에 하트 모양 달개가 달려 있다. 드리개 위와 아래에는 각각 두꺼비와 도깨비 무늬가 투각된 금판이 달려 있다​.

꼬임형 금꾸미개​
14

꼬임형 금꾸미개​

금줄과 금판을 꼬아서 만든 꼬임형 꾸미개이다. 금(Au) 성분이 93.5~96.9% 함유된 단면 원형의 금줄을 나선형으로 돌려 만든 것으로, 봉상(棒狀) 물체의 외면을 장식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왕의 허리띠 부근에 놓여 있었는데 용도는 알 수 없다.

금·은장식 손칼(왕)
15

금·은장식 손칼(왕)

왕의 허리 부근에서 출토된 금·은장식 손칼이다. 왕의 은허 리띠와 용·봉황무늬 고리자루큰칼 사이에서 출토되었다. 손잡이는 가죽으로 감싼 것으로 추정되며, 중간 위치에 고리가 달린 은판이 끼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허리띠 등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용·봉황무늬 고리자루큰칼(왕)
16

용·봉황무늬 고리자루큰칼(왕)

왕의 왼쪽 허리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자루 끝 고리에는 2마리의 용이 서로 교차하여 배치되고 고리 안은 용의 머리가 장식되었다. 손잡이 중간에는 새김눈이 있는 금실과 은실을 빼곡히 감았고, 칼 집에는 은장식을 덧댄 긴 금판을 붙이고 못을 박아 고정하였다.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며, 이러한 칼은 중국에서도 같은 형식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 백제적 미감과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동거울(왕)
17

청동거울(왕)

왕의 발치에서 출토된 방격규구신수문경(方格規矩神獸文鏡)이다. 거울걸이(鈕)를 중심으로 4각으로 구획하고 그 주위에 신선(神仙, 혹은 상투를 틀고 샅바를 멘 사냥꾼)과 신수(神獸, 호랑이, 암사슴, 개, 뿔이 하나 달린 신수)를 표현하였다. 가운데 구획면 안쪽으로 12개의 작은 돌기가 있고 그 사이에 12간지가 쓰여 있다. 이 신수무늬 바깥 둘레에는 ‘尙方作竟眞大好上有仙人不知老渴飮 玉泉飢食棗壽(如)金石兮(상방에서 만든 거울은 참으로 좋아 옛날 선인들이 늙지 않았고 목마르면 옥샘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대추를 먹으며 쇠, 돌과 같이 긴 생명을 누렸도다)’ 라고 쓰여 있다.

청동거울(왕)
18

청동거울(왕)

왕의 머리에서 출토된 청동거울로 무령왕릉 출토 거울 중 가장 크다. 가운데 거울걸이를 중심으로 9개의 작은 돌기가 돌려지고 그 사이로 동물과 ‘의자손(宜子孫)’ 글자가 새겨져 있어 흔히 의자손수대경이라 부른다. 그 바깥 원에는 7개의 큰 돌기가 돌려져 있고, 그 사이에 사신(四神)을 비롯한 동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의자손수대경과 같은 거푸집을 사용해 만든 거울이 일본 군마현(群馬縣) 간논야마(觀音山) 고분에서도 출토되어 무령왕의 국제성을 입증해 준다.

금동신발(왕)
19

금동신발(왕)

왕 나무널 발치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좌측판과 우측판, 바닥판으로 구성된다. 무늬 없는 은판에 맞새김(透彫)한 금동판을 덧댄 후 동실(銅絲)과 못(리벳)으로 고정하였다. 좌·우측판에는 원형의 달개를 꿴 동실로, 바닥판은 원형의 달개를 꿴 동실과 스파이크로 고정하였다. 무늬는 육각무늬 모서리가 상하 방향으로 배치되었다. 성분 분석 결과 신발 안쪽 면에 덧댄 은판은 은(Ag) 99%로 확인되었다. 금동신발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대형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같은 시기 일본 고훈시대에서도 유사 형태의 신발이 확인되어, 이 시기 활발한 한일 교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중국도자​
20

중국도자​

무령왕릉에서는 청자단지(靑磁壺) 2점, 흑유병(黑釉甁) 1점, 청자잔(靑磁盞) 6점이 거의 온전한 형태로 출토되었다. 청자단지는 표면에 연꽃무늬를 얕게 조각하고 어깨 부분에 6개의 귀를 달고 있다. 뚜껑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각 1점이 확인되었는데, 출토 당시 널길 앞부분에서 청동숟가락 등과 함께 발견되어 제사용기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흑유병은 왕의 머리쪽 흩어진 목관 앞에서 출토되었다. 어깨에는 4개의 귀가 달리고 주둥이는 반구형(盤口形)에, 목 중간에는 두 줄의 죽절무늬(竹節文)가 있다. 6점의 청자잔 중 5점은 무령왕릉 등감(燈龕)에서 나온 등잔으로, 안에 그을음이 많다. 나머지 1점은 흑유병 옆에서 발견되어 술잔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국도자들은 무령왕의 사망 후 524년 왕위를 계승 받은 성왕이 사신을 양 나라에 보내면서 장례 위문의 뜻으로 받아 온 예장품으로 보기도 한다.

베개 잔편과 발받침(왕)
21

베개 잔편과 발받침(왕)

베개 편은 무령왕 나무널 안 북쪽에서, 발받침은 남쪽에서 각각 확인되었다. 나무 표면에 바탕칠 없이 바로 전체적으로 검은 옷칠을 한 뒤 장방형 금판을 이어서 육각형 무늬를 만들고, 그 모서리와 중앙에는 달개 달린 꽃 모양 금꾸미개를 1개씩 붙여 장식하였다. 머리와 발을 놓는 부분과 바닥면에는 장식을 생략했다. 왕 베개 목재의 수종(樹種)을 분석한 결과 주목(朱木)으로 밝혀졌다.

나무널 마구리 장식(왕)
22

나무널 마구리 장식(왕)

왕의 나무널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모양은 육각형 2점, 짧은 직사각형 7점, 긴 직사각형 5점이 확인되었다. 목관 전후면 양 끝단(마구리)에 붙인 금속 부속품으로, 편백나무를 널판의 단면과 같은 모양으로 깎아 다듬고 그 위에 은판을 씌워 못으로 고정하였다. 성분 분석 결과 은판은 은(Ag) 99.1~99.8%이고, 마구리 장식에 박힌 못 머리 금판은 금(Au) 91.3~94.1%로 밝혀졌다.

나무널 뚜껑(왕)
23

나무널 뚜껑(왕)

나무널 앞면 단측판(왕)
24

나무널 앞면 단측판(왕)

나무널 뒷면 단측판(왕)
25

나무널 뒷면 단측판(왕)

나무널 왼쪽 장측판(왕)
26

나무널 왼쪽 장측판(왕)

나무널 오른쪽 장측판(왕)
27

나무널 오른쪽 장측판(왕)

널못_철지금장·동지은장 화형두(왕)
28

널못_철지금장·동지은장 화형두(왕)

02
왕비의 껴묻거리

무령왕비의 묘지석은 왕의 매지권 뒷면을 이용해 만들었다. 발견 당시 왕의 매지권 면이 아래로, 왕비의 묘지면이 위로 향하고 있었다. 묘지석 위로 오수전(五銖錢) 한 꾸러미가 놓여 있었고, 현재도 오수전이 놓였던 녹 흔적이 남아 있다. 이것으로 보아 왕비가 돌아가시고 대묘(大墓)에 모셔진 529년경에 매지권 돌려 뒷면에 왕비 묘지를 새긴 후 오수전을 다시 그 위에 올려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묘지 명문 중에는 서쪽의 땅이란 방위 의미의 ‘酉地(유지)’가 적혀 있는데, 이를 토대로 공주 정지산 유적이 왕비의 삼년상을 치룬 빈전(殯殿)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된 바 있다.

묘지석(왕비)
01

묘지석(왕비)

묘지석(왕비)
관꾸미개(왕비)
02

관꾸미개(왕비)

왕비의 머리 부분에서 1쌍의 관꾸미개가 서로 겹쳐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금(Au) 99.0~99.2%가 함유된 판을 얇게 두드려 편 다음 연꽃무늬와 팔메트 무늬, 현병(賢甁)을 각각 대칭으로 오려 만들었다. 현병에서 갈라져 나온 인동초 줄기는 왕의 관꾸미개와 같이 불꽃처럼 퍼져 나가다가 위로 갈수록 오므라든다. 전체 무늬는 연꽃이 피는 모습, 즉 연화화생蓮華化生(극락세계의 연꽃에서 만물이 신비롭게 탄생한다는 불교의 생성관)의 모습과 유사하다.

무령왕비의 꾸미개들은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다. 출토 위치와 제작 양상으로 꾸미개의 용도를 살펴볼 수 있는데, 왕비는 머리 부분부터 순서대로 관꾸미개, 금귀걸이(2쌍), 금목걸이(2점), 금구슬, 오각형 은꾸미개, ‘다리작(多利作)’명 은팔찌, 금·은 장식손칼(2점), 유리 동자상, 네잎형 금꾸미개, 금동신발과 함께 발치 한쪽에는 소형의 금팔찌(1쌍), 은팔찌(2쌍)가 출토되었다. 이 중 금으로 만든 꾸미개들은 금의 순도가 매우 높게 나왔는데, 특히 관꾸미개와 귀걸이, 목걸이에서 98%가 넘는 금 함유량을 보여 제작에 더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제작기법 또한 왕의 꾸미개와 같이 현대의 기술로도 재현하기가 까다로운 누금기법(鏤金技法) 등 다양한 장식기법이 곳곳에 보인다.

사각형 금꾸미개(왕비)
03

사각형 금꾸미개(왕비)

달개로 장식한 금꾸미개로 왕비의 베개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가운데 부분은 반구형으로 돌출되었다. 각 변의 중간과 모서리에 구멍이 뚫려 있어 어딘가에 실로 꿰매어 부착했음을 알 수 있다. 금(Au) 함유량은 98.9~99.1%로 왕비의 관꾸미개와 유사하여 동일 재료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귀걸이(왕비)
04

금귀걸이(왕비)

왕비의 관꾸미개 주변에서 발견된 2쌍의 금귀걸이 중 1쌍이다. 속이 비어있는 원형의 중심고리에는 한 개의 가는 노는고리가 연결되어 있고, 그 아래로 짧고 긴 2줄의 드림 장식이 달려 있다. 드림 장식은 모두 금사슬로 연결시켜 나뭇잎 모양 달개를 매달고, 짧은 것 윗부분에는 청녹색 유리구슬이 끼워져 있고, 아래에는 테두리에 누금(鏤金)이 붙은 펜촉 모양의 끝장식이 달려 있다. 긴 드림 장식 끝에는 길이 3cm의 탄환 모양 장식이 달려 있다. 금(Au) 성분은 98.1~99.7%이다.

금귀걸이(왕비​)
05

금귀걸이(왕비)

왕비의 관꾸미개 주변에서 발견된 2쌍의 금귀걸이 중 나머지 1쌍이다. 제작기법은 다른 한 쌍과 같다. 성분 분석 결과 금(Au)이 97.0~99.7%로 확인되었다.

금귀걸이(왕비)
06

금귀걸이(왕비)

왕비의 발 쪽에서 출토된 금귀걸이이다. 크기가 작고 장식이 간결하며, 금(Au) 함유량은 93.7~94.1% 정도이다. 중심고리는 속이 비어 있지 않은 금봉을 구부려 만들고 그 아래 얇은 금실을 두 번 감은 다음 가로로 두세 번 더 감아서 마무리하였다. 끝장식에는 지름 1.3cm 정도의 둥근 금판이 달려 있다. 크기가 작은 편이며, 출토 위치가 발 쪽에 해당하여 왕비의 유년시절 용품으로 추정된다.

금목걸이(왕비)
07

금목걸이(왕비)

왕비의 관꾸미개 부근에서 서로 겹쳐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목걸이는 중간이 굵고 양 끝이 가는 금봉(金棒)을 서로 연결하여 만들었으며 하나는 마디가 9절이고 다른 하나는 7절이다. 금봉의 양 끝은 길게 늘여 고리를 만든 후 다시 금봉에 6~10바퀴 정도 감은 다음 마무리하였다. 9절과 7절 모두 연결부 가운데에 작은 고리가 하나씩 끼워져 있다. 성분 분석 결과 금(Au) 함유량은 9절이 98.8~99.0%, 7절이 98.4~98.8%로 확인되었다.

금구슬(왕비)
08

금구슬(왕비)

금구슬은 왕비의 머리와 가슴 부근에서 흩어진 채 발견되었다. 금판에 누금기법(鏤金技法)으로 작은 금알갱이를 이어 붙여 12개의 고리를 만든 후 이것을 서로 맞붙여 공 모양으로 만든 장식이다. 왕의 귀걸이 드림 장식에서도 누금기법이 확인되지만 이 금구슬은 고리 3개가 만나는 지점마다 금알갱이를 추가로 덧붙여 더욱 화려하다. 모두 187점의 금구슬이 확인되었으며, 금(Au) 함유량은 97.2~99.5%이다.

금색 유리식옥​
09

금색 유리식옥​

왕비의 가슴과 허리 부분에서 각종 유리구슬과 함께 출토되었다. 가는 유리 대롱에 색을 칠하고 약간 굵은 유리 대롱을 덧씌워서 두 겹으로 만든 뒤 일정한 간격으로 자른 것이다. 금색을 띠어 처음에는 금박으로 추정하였으나, 내부와 외부 유리구슬 사이에 존재하는 성분을 분석한 결과 금이 아닌 은으로 확인되었다. 제작 당시 의도적으로 착색제인 산화철(Fe2O3)을 사용하여 금박처럼 보이게 색을 조절한 것이다. 이 금색 유리식옥의 제작과 색 조절 기법 등은 백제 유리제작 기술의 뛰어난 수준을 보여준다.

글자를 새긴 용무늬 은팔찌(왕비)
10

글자를 새긴 용무늬 은팔찌(왕비)

왕비의 왼쪽 팔목 부근에서 발견된 1쌍의 팔찌이다. 명문(銘文)과 무늬가 똑같이 새겨졌으며, 내면은 편평하고 외면은 반원(半圓)이다. 외면에는 주조로 용 두 마리 형태를 만들고 비늘은 정으로 쪼아 새겨 넣었다. 용은 혀를 길게 내밀고 머리를 뒤로 돌리고 있다. 발톱은 세 개이며, 팔찌 내면에는 양옆에 새김눈(刻目)이 있다. 은판에는 17자의 명문 ’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卅主耳’이 새겨졌고, 뜻은 ‘多利(다리)’라는 장인이 庚子年(520)년에 大夫人(왕비)에게 은 230主耳(또는 銖)를 들여 만들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것으로 팔찌는 왕비가 돌아가시기 전 제작된 후 무덤에 안장될 때 함께 묻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금팔찌(왕비)
11

금팔찌(왕비)

왕비의 금팔찌로 큰 것 2점, 작은 것 2점이다. 큰 것은 왕비 오른팔 쪽에서 발견되었고, 작은 것은 발 쪽에서 다른 작은 은팔찌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크기만 다를 뿐 형태는 서로 같다. 금(Au)은 94.5~94.8%가 함유되었다.

은팔찌(왕비)
12

은팔찌(왕비)

은팔찌(왕비)
13

은팔찌(왕비)

네잎모양 금꾸미개(왕비)
14

네잎모양 금꾸미개(왕비)

유리동자상(왕비)
15

유리동자상(왕비)

금·은장식 손칼(왕비)
16

금·은장식 손칼(왕비)

왕비의 목관에서 발견된 3점의 손칼이다. 이 중 사진의 왼쪽부터 첫 번째와 두 번재 손칼은 세 번째 손칼과 크기와 모양에서 차이를 크게 보인다. 첫 번째 손칼은 왕비의 허리 부근에서, 두 번째는 왕비의 금동신발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세 번째는 왕비 머리 쪽에서 청동바리 안에 청동숟가락과 함께 담겨진 채로 출토되어 앞의 두 손칼과 다른 의미로 부장된 것으로 보인다.

받침 있는 은잔(왕비)
17

받침 있는 은잔(왕비)

왕비의 머리 쪽에서 발견되었으며, 뚜껑과 잔, 받침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은 청동으로, 뚜껑과 잔은 은으로 만들었다. 청동받침 가운데에는 은잔의 굽을 끼워 맞출 수 있는 홈이 있는데 굽과 꼭 들어맞아 안정감이 있다. 받침 중앙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지고 주변으로 신수(용, 사슴, 새 4마리)가 자유롭게 노니 듯 새겨졌는데, 손에 꽃을 든 인면조(人面鳥)가 가장 눈에 띈다. 은잔 외면에는 연꽃무늬와 용 3마리가 잔 둘레를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뚜껑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꼭지가 달리고, 그 아래 연꽃무늬 금판이 붙어 있으며 또 그 아래에는 음각으로 새긴 큰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뚜껑 아래로는 삼산형(三山形)의 산봉우리 사이로 봉황과 새(또는 주작), 사슴, 나무가 배치되었다. 전체 도상의 배치와 요소는 백제금동대향로와 부여 외리 출토 무늬벽돌과 매우 유사하다.

청동다리미(왕비)
18

청동다리미(왕비)

왕비의 발치에서 발견된 청동다리미로 백제에서 발견된 예로는 유일하다. 다리미는 원반 모양의 몸체와 긴 손잡이를 각각 따로 만들어 붙였다. 단면이 반원형인 손잡이는 끝으로 갈수록 들려 있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졌다. 다리미 몸체에 천 조각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직물로 감싸 무덤 안에 넣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유사한 다리미가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다카이다야마(高井田山) 고분에서 출토되어 주목된다.

청동거울(왕비)
19

청동거울(왕비)

왕비의 머리 부분에서 발견되었다. 전체 모습은 왕의 의자손수대경과 비슷하지만 돌기가 비교적 작은 편이다. 가운데 거울걸이를 중심으로 9개의 작은 돌기와 그 바깥으로 7개 조금 큰 돌기가 등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7개의 돌기 주변에는 원상(圓狀)의 무늬가 소용돌이처럼 2개씩 돌려져 있다. 돌기 사이에는 사신을 비롯한 동물이 새겨져 있다.

금동신발(왕비)
20

금동신발(왕비)

왕비 나무널 발치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좌측판과 우측판, 바닥판으로 구성된다. 무늬 없는 금동판에 맞새김(透彫)한 금동판을 덧댄 후 동실(銅絲)과 못(리벳)으로 고정하였다. 좌·우측판에는 원형의 달개를 꿴 동실로, 바닥판은 원형의 달개를 꿴 동실과 스파이크로 고정하였다. 무늬는 육각무늬의 모서리가 좌우 방향으로 배치되고 육각형 테두리선이 좁게 맞새김(透彫)되었으며, 그 내부에 점무늬를 새기지 않았다. 대신 신발 위 쪽의 테두리를 따라 2겹의 물고기 비늘무늬(魚鱗文)와 1열의 점무늬를 타출하였다. 바깥 면은 꽃과 새 무늬가 기본 도안으로 맞새김되었다.

베개와 발받침(왕비)
21

베개와 발받침(왕비)

베개 편은 무령왕비 나무널 안 북쪽에서, 발받침은 남쪽에서 각각 확인되었다. 나무 표면에 천연광물인 진사(辰砂)를 붉게 칠하고 그 위에 검은 먹과 흰색 안료로 여러 무늬를 그려 넣었다. 베개는 폭이 좁은 금박으로 테두리를 돌리고 안쪽에 금박으로 육각형 문양을 만들었으며, 발받침은 테두리에만 금박을 붙여 장식했다. 왕비 발받침 목재의 수종(樹種)을 분석한 결과 향나무속(屬)으로 밝혀졌다.

마름모형 금꾸미개​
22

마름모형 금꾸미개​

금(Au) 이 91.4~95.7%가 함유된 금판을 오려 만든 것으로 모두 24점이 확인되었다. 일부는 왕비의 가슴 부근과 발치 쪽에서 발견되었다. 왕비의 발받침에 꽂혀있던 쇠막대에 장식된 꾸미개와 같은 형태로, 한쪽 끝부분이 꼬여있거나 구부러져 있어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던 꾸미개로 추정된다.

나뭇잎형 금꾸미개​
23

나뭇잎형 금꾸미개​

왕비의 다리 부분에서 일부 발견되었으며, 모두 16점이다. 뾰족한 도구를 사용하여 잎줄기를 새겨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잎의 끝부분이 약간 말려 있는데, 왕비 발받침의 쇠막대를 장식했던 재료로 추정된다. 3점을 샘플로 금(Au) 성분을 조사한 결과 92.3~94.2%로 나타났다.

나무널 뚜껑(왕비)
24

나무널 뚜껑(왕비)

나무널 앞면 단측판(왕비)
25

나무널 앞면 단측판(왕비)

나무널 뒷면 단측판(왕비)
26

나무널 뒷면 단측판(왕비)

나무널 왼쪽 장측판(왕비)
27

나무널 왼쪽 장측판(왕비)

나무널 오른쪽 장측판(왕비)
28

나무널 오른쪽 장측판(왕비)

시상(왕비)
29

시상(왕비)

널못_철지은장 화형두(왕비)
30

널못_철지은장 화형두(왕비)

03
그 외의 출토품​
오각형 금꾸미개​
01

오각형 금꾸미개​

2개의 금판을 붙여 만든 오각형 장식이다. 왕의 관식 주변 및 왕비의 머리 오른쪽과 가슴 등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며 모두 8점이다. 정상부를 제외한 나머지 변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어딘가에 꿰매어 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Au) 함유량은 94.5~99.1%이다.​

오각형 금꾸미개
02

오각형 금꾸미개

1개의 금판으로 이루어진 오각형 장식이다. 모두 13점으로 별도의 문양은 확인되지 않으며, 맨 밑변의 중앙과 좌우에 2개씩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 매달아 장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타원형 금꾸미개​
03

타원형 금꾸미개​

중간에 원형의 구멍을 중심으로 판의 안쪽으로 약간 오므라든 형태이며, 모두 4점이 출토되었다. 금(Au) 함유량은 98.7~98.9%이다.

달개 달린 꽃 모양 금꾸미개(대형)
04

달개 달린 꽃 모양 금꾸미개(대형)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꽃 모양 금꾸미개 중 너비가 4.0cm로 크기가 큰 편에 속한다. 모두 38점이 확인된다. 가운데 부분은 볼록하다. 꽃잎 사이에 구멍이 뚫려 있어 옷이나 천에 붙여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성분 분석 결과 금판, 달개, 금실 모두 같은 재료로 제작하였고, 금(Au) 함유량은 93.4~94.1%이다.

달개 달린 꽃 모양 금꾸미개(소형)
05

달개 달린 꽃 모양 금꾸미개(소형)

꽃 모양 금꾸미개​
06

꽃 모양 금꾸미개​

원형 금꾸미개​
07

원형 금꾸미개​

달개 달린 원형 금꾸미개​
08

달개 달린 원형 금꾸미개​

꽃 모양 은꾸미개(대형)
09

꽃 모양 은꾸미개(대형)

꽃 모양 은꾸미개(대형)
10

꽃 모양 은꾸미개(대형)

원형 은꾸미개​
11

원형 은꾸미개​

달개 달린 원형 청동꾸미개​
12

달개 달린 원형 청동꾸미개​

오각형 은꾸미개​
13

오각형 은꾸미개​

마름모형 은꾸미개​
14

마름모형 은꾸미개​

꼬임형 은꾸미개​
15

꼬임형 은꾸미개​

모자모양 금꾸미개​
16

모자모양 금꾸미개​

얇은 금판을 말거나 오려 붙여 기본 형태를 만들고, 가는 금실과 금 알갱이를 붙여 화려하게 장식한 금꾸미개이다. 모자 모양(帽子形), 대롱 모양(管形), 총알 모양(銃彈形)으로 구분된다. 일부 꾸미개에는 금실로 만든 원형 또는 삼각형 구멍 안에 붉은색 안료를 채워 넣어 화려함을 더하기도 하였다. 이중 8점을 샘플로 금(Au) 성분을 분석한 결과 91.2~99.9%로 확인되었다.

금모자 장식 곱은 옥​
17

금모자 장식 곱은 옥​

곱은 옥​
18

곱은 옥​

곱은 옥​
19

곱은 옥​

유리구슬​
20

유리구슬​

대롱옥​
21

대롱옥​

대롱옥1
22

대롱옥​

대롱옥1
22

대롱옥​

대추모양 옥​
23

대추모양 옥​

대추모양 옥​
24

대추모양 옥​

유리옥​
25

유리옥​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구슬의 세부 수량은 모두 31,210점으로, 금, 은, 옥, 흑옥, 유리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유리로 만든 구슬은 30,741점으로 전체 수량의 약 97%를 차지하며, 곱은 옥, 대롱구슬, 연리무늬 대롱옥, 둥근 구슬, 박유리 구슬 등 다양한 형태가 확인된다. 유리옥은 주황색, 황색, 녹색, 청색, 자색, 적갈색 등 색이 다양한데, 이 가운데 단일색으로는 주황색이 8,338점으로 가장 많다. 색상 계열로는 녹색, 청색 등 짙은 남·청색 계열이 18.116점으로 전체 수량의 60%를 차지한다. 무령왕릉 출토 유리옥은 납유리, 소다유리, 포타쉬유리 등 다양한 기술로 만들어졌고, 산지 분석 결과 원료에 포함된 납의 산지가 태국으로 밝혀졌는데, 이로 보아 백제가 동남아시아, 남조 등 다양한 국가와 교류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은으로 장식한 창자루​
26

은으로 장식한 창자루​

무덤방 서벽 모서리 근처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창 끝 일부는 결실된 상태이지만 비교적 잘 남아있으며, 창 자루와 결합되는 부분은 은으로 장식하였다. 삼나무로 만든 창자루는 표면에 옻칠이 되어 있다. 장례를 치를 때 창으로 무덤의 네 모서리를 쳐서 시신이 들어갈 자리에 악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치른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장식​
27

금동장식​

4엽형의 장식을 눕히고, 그 위에 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을 꽂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는 금동제 장식이다. 왕비의 팔찌 아래쪽으로 약 40cm 떨어진 위치에서 2점이 겹쳐진 채로 발견되었다. 세움 장식은 표면에 달개를 달았으며, 곧게 올라가다 두 개의 가지로 갈라지는데 한 가지는 거의 곧게 올라가고 다른 한 가지는 비스듬하게 뻗어나간 모습을 보인다​.

제사상​
28

제사상​

널방과 접한 널길에 마련된 제대(祭臺) 1기와 제사용 청동그릇과 수저세트이다. 제대는 흑칠(黑漆)된 나무판(木板) 조각으로 표면에 남겨진 흰색의 테두리와 청동그릇의 굽을 맞춰본 결과 제일 앞쪽에는 청동접시 2점이, 그 뒤로는 가운데에 청동완 2점, 그 양옆으로 청동잔 2점이 한 쌍을 이루어 각각 상하로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널길 입구 쪽에서 발견된 청동숟가락 2개와 무덤방과 출토위치가 불분명한 곳에서 각각 발견된 청동젓가락 2벌도 제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동잔과 완​
29

청동잔과 완​

청동숟가락​
30

청동숟가락​

청동바리​
31

청동바리​

은어뼈​
32

은어뼈​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290여 점의 물고기뼈가 수습되었다. 조사 결과 은어 세 마리 분과 기타 물고기뼈로 확인되었다. 은어뼈가 청색으로 변색된 것에 대해 은어가 제대 위의 청동접시에 담긴 후 접시가 부식되면서 은어뼈가 청색으로 변색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은어는 봄에 바다에서 거슬러 올라와 가을까지 강의 중·상류에서 서식하며 몸체 길이가 보통 25cm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령왕이 무덤에 안장된 8월에 잡혀 제사상에 올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문​
33

나무문​

나무문은 널길 중간과 널방 입구 사이에서 2조각이 출토되었는데, 진묘수 바로 뒤쪽에서 발견되었다. 목재와 안료 성분을 분석한 결과 표면에서 붉은색 진사(辰砂)를 칠한 흔적이 확인되었고 수종(樹種)은 삼나무로 밝혀졌다. 널방 입구에 설치했던 나무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문고리​
34

문고리​

금동 테 두른 목기​
35

금동 테 두른 목기​

주칠기 조각​
36

주칠기 조각​

‘~士 壬辰年作’명 벽돌​
37

‘~士 壬辰年作’명 벽돌

무령왕릉 막음벽돌에서 확인된 명문(銘文)벽돌이다. 결실된 부분 반절연꽃무늬 (半切蓮花華文)가 새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에 대해 ‘~士’를 ‘瓦博士’나 ‘塼博士’의 일부로 보거나 ‘士’ 앞에 ‘師○○’ 글자가 결실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壬辰年(임진년)’이란 명문으로 벽돌의 제작시점은 512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으로 무령왕이 무덤을 생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거나, 다른 곳에 쓰였던 벽 돌을 무령왕릉 널문을 막는데 재활용한 것이란 두 가지 해석으로 보고 있다.